| 두 권짜리로 쓰여졌다면 더 좋았을 책 - 맑스주의 역사강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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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짜리로 쓰여 졌으면 더 좋았을만한 책 - ‘맑스주의 역사강의’(한형식 지음 / 그린비 출판)을 읽고서 제목이 ‘맑스주의 역사강의’인데 맑스주의라는 이론 또는 사상의 역사를 다루었다는 뜻인지 맑스주의에 기초한 역사해설서라고 보아야 하는지 헷갈렸다. 책을 다 읽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내가 워낙 무식한 것인가? 아니면 책의 의도가 불분명한 것인가? 그 이유는 이 책 ‘맑스주의 역사강의’가 당연히 전자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나니 사실 후자로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맑스주의를 공부한다고 하는 말 자체가 사실 좀 막막하다. 야심차게 ‘자본론’부터 보면 되는건가? 아니면 최근 맑스주의를 재해석 아니면 재창조하고 있다는 들뢰즈나 지젝이나 뭐 그런거부터 보면되나? 사실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 80년대나 90년대초반까지 대학신입생들이 선배들 손에 이끌려 세미나에서 순서대로 보던 책들의 목록, 그리고 토론꺼리들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황당한 것은 그런 맑스주의 세미나 커리들이 사라진 것이 소위 운동권들의 손에 의해서 자행되었다는 사실 이다. 정치적입장에 따라 정파가 나뉘고 진보운동의 기초가 되어왔던 맑스주의에 대한 기본공부는 커녕 각자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들의 입장들을 주입시키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 입장의 논거가 되는 이론들도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니 이제 맑스주의는 중요한게 아니고 각 정파들의 이론체계와 논거만 중요해진 시대가 한참을 흘러갔다. 그냥 정파적 입장없이 맑스주의를 공부해보면 안되나? 그래서 역사속에서 사상과 이론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아쉬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장점이라면 이 책 ‘맑스주의 역사강의’는 어떠한 사상과 이론도 해당 시대의 치열한 고민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사상과 이념이란 그 시대를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간다는 사실을 역사적 배경과 이론가, 실천가들의 현실적 고민들을 설명해주며 그들의 고민에 독자들을 다가가게 만든다. 그런 측면에서 맑스주의 공부라는 것도 해당시기 왜 그런 이론과 사상들이 나왔는지 해당시기의 치열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알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진다. 세계를 해석하는게 아니라 변화하겠다고 한게 맑스주의인데 해당시기 현실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제거해버린 텍스트만으로서의 맑스주의가 가능은 하단 말인가?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속에서의 맑스주의와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운동이념으로서의 맑스주의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장점이 아이러니하게도 아쉬운 지점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책이 두 권이나 세권짜리로 쓰여졌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만약 두 권이나 세권짜리 책으로 기획되어 더 풍부한 역사적 사실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 질만한 분량이 확보되었다면 맑스주의 사상의 변화발전이나 계승에 대한 역사강의이자 동시에 훌륭한 세계사 강의도 될 수 있었을텐데. 팩트와 통계만을 강조하는 요즘 역사책들에 어느순간 지루함을 느끼는 와중에 ‘민중의세계사’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와 같은 선명한 입장의 역사책이 그리워질 때쯤 맑스주의에 입각한 훌륭한 세계사 역사강의 책이 한권쯤 등장하는 건 충분히 멋지지 않을까. 특히 이 책 중간중간에 저자가 보여주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친절하고도 차분한 설명솜씨를 보면 그 아쉬움은 배가 된다. 가끔 책이 더 두꺼웠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하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





